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란덴부르크 문 (문단 편집) === 20세기 === [[1차 대전]] 종전 후 [[독일군]]도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개선식을 열었으며, [[1933년]] 집권한 [[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]]은 자신들의 상징 [[하켄크로이츠]]를 이 브란덴부르크 문에 덕지덕지 붙여놓기도 했다. [[히틀러]]는 [[독일]]이 전쟁에서 승리 시 [[베를린]]을 세계수도로 탈바꿈시키려는 [[세계수도 게르마니아]] 계획에서 브란덴부르크 문을 뒤덮는 새로운 초거대 [[개선문]]을 세우려 했으나 꿈으로 끝났다. 이후 [[2차 대전]]의 [[베를린 공방전]]을 거치면서 브란덴부르크 문은 심하게 파손된다. 기둥 곳곳이 [[총알]]과 [[포탄]] 파편으로 손상된 것은 물론 가장 중요한 부분인 사두마차(Qurdriga)에서 한 마리를 제외한 세 마리 말이 모두 [[목 없는 말|머리가 날아간 것]]. 이러한 손상은 전쟁 이후로도 몇년간 그대로 유지된다. 물론 대충 복구를 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숭숭 뚫린 구멍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. [[파일:external/32925a923279e437303139a36a15f8b2744d7398d93ca6963e76bb68cee583c2.jpg]] 브란덴부르크 문 앞의 [[T-34-85]] [[전차]]. 참고로 저 [[T-34/85]] [[전차]] 옆에 달린 철망은 현재 [[슬랫아머]]의 기초가 되는 물건이다. [[판처파우스트]]로 숨펑숨펑 부서지는 [[T-34/85]]를 위해 임시방편으로 설치한 물건. [[파일:냉전시기 브란덴부르크문.jpg]] [[베를린 장벽]]이 건재하던 시절의 브란덴부르크 문. [[2차대전]]을 거치면서 여신이 들던 [[참나무]] 잎과 [[철십자]](혹은 [[나치당]] 집권기에 [[하켄크로이츠]]로 개수되었던?)가 떨어져 나간것을 볼수 있다. 이후 세계는 [[냉전]]의 시기로 돌입하고 그 가운데에 서있던 [[독일]]과 그 수도, [[베를린]] 역시 둘로 나뉘게 되었으며 브란덴부르크 문은 동/서 [[베를린]]을 나누는 경계선의 기점이 되었다. 처음에는 동[[베를린]]과 서[[베를린]] 모두 서로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다. 그러나 [[냉전]]이 시작되고 동서독 양쪽에 별개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점점 왕래가 힘들어지더니 1961년 [[동독]]은 일방적으로 [[베를린 장벽]]을 세워 통행을 막았다. 물론 아예 막혀버린 것은 아니지만, 동[[베를린]]에서 서[[베를린]]으로 이 문을 통해 건너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. 특히나 [[동독]]이 [[베를린 장벽]] 중간중간에 세운 8곳의 검문소 중 하나가 이 브란덴부르크 문이었는데, 그것으로 인해 이 문은 [[냉전]]과 [[독일]] [[분단]]의 상징으로 자리잡는 불운을 겪는다. 이를 증명하듯 방독한 [[미국 대통령]] [[로널드 레이건]]의 [[이 장벽을 허무시오]] 연설 또한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열렸으며 브란덴부르크 문 또한 [[베를린 장벽]]의 닫혀있는 문으로 은유된다. [[파일:19900312-21b.jpg]] [[베를린 장벽]]이 허물어진 직후인 1990.3.13, 브란덴부르크 문 사두마차(Qurdriga) 위에 날리는 [[동독]] [[국기]]. 건너편으로는 서[[베를린]]인 [[베를린 전승기념탑]]도 보인다. 동/서 [[베를린]]의 경계 자체는 문에서 서쪽으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기에 문 자체는 [[소련군]] 관할, 즉 동[[베를린]] 소속. 때문에 통일 전까지 브란덴부르크 문 위는 [[동독]] [[국기]]가 걸려 있었다. 하지만 1990년 [[독일 재통일]]을 이루면서, 다시 통일의 상징으로 바뀌었다. [[헬무트 콜]] [[서독]] [[수상]]이 한스 모드로우 [[동독]] [[수상]]과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서로 만난 것이 대표적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